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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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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연 조회 313회 작성일 20-07-14 16:41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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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에서의 3ㆍ1운동은 제주의 관문인 조천지역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4일 간에 걸쳐 전개되었다. 이 시기는 전국적으로도 3ㆍ1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해당한다. 


운동의 발단은 당시 휘문고보 4학년인 제주 조천 출신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귀향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이미 김시범(金時範)ㆍ김시은(金時殷) 등이 전국 각 지역에서 조선 독립을 선언하는 시위운동이 발발하고 있음을 듣고, 독립운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들은 1873년(고종10) 제주에 유배온 최익현으로부터 척사론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유림세력이었다. 즉 최익현의 문인이며, 한말 제주도에서 도학(道學)의 제일인자였던 김희정(金羲正)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김시우와 이들은 서로 형제지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김시학 역시 형제간 이었다. 



이들은 김응빈ㆍ김응전 등과 조천 지역에서 전통적인 양반세력으로 불리는 소위 '조천김씨(朝天金氏)'의 핵심적인 인물들이다. 특히, 김시학(金時學)은 김명식(金明植)과 함께 일본 유학 중에 조선유학생학우회(朝鮮留學生學友會)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때 조선유학생학우회의 회장인 신익희(申翼熙)와의 교유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인연이 연유가 되어 김시학은 1917년 신익희 등을 방문하여 1차대전이 끝나면, 일본의 세력이 약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 기회에 조선의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의하기에 이른다. 이에 송진만(宋鎭萬)ㆍ임영효(林泳孝) 등과 밀의, 범사회계층을 구성하여 조선의 독립을 모색해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차대전이 종식되자, 이와 같은 움직임은 전민족적인 운동인 3ㆍ1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1917년 김시학의 조선독립방안 제의는 그 후 3ㆍ1운동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제주 출신 김시학은 3ㆍ1운동의 선창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후 김시학의 구체적인 행동은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1927년 11월 '조선농인사(朝鮮農人社)'를 창립할 때, 여운형(呂運亨)과 함께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사실만이 확인된다. 



어떻든 조천지역에서 항일운동이 고조되어 나가고 있던 상황에 직접적인 도화선을 제공한 이는 다름 아닌 김시학의 아들이며 김시범(金時範)ㆍ김시은(金時殷)의 조카인 김장환(金章煥)이었다. 김장환은 경성에서 3ㆍ1만세 시위에 가담하여 활동을 전개하다, 3월 5일 이후 시위자 색출 작업이 강화되자 3월 12일 제주 귀향을 결심하였다. 그래서 3월 15일 목포에 도착하였고, 조천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인 3월 16일이었다. 이 때 김장환은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제주에 들어 왔는데, 인사차 숙부 김시범을 찾아간 그는 서울의 시위상황을 소상히 말하였다. 김시범ㆍ김시은은 전국 각지에서 3ㆍ1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여러 반편(般便)이라든가 인편(人便)에 익히 듣고 있던 터라 제주지역에서의 시위운동을 결심하게 된다. 


김시범은 김시은ㆍ김장환과 함께 3월 17일 경 조천리 매모치(昧毛峙)(속칭 미밋동산)에서 거사 발의를 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이들의 동지 규합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3월 19일까지 규합된 인원은 14명의 거사 동지였다. 즉 김시범(金時範)ㆍ김시은(金時殷)ㆍ고재륜(高載崙)ㆍ김형배(金瀅培)ㆍ김연배(金年培)ㆍ황진식(黃鎭式)ㆍ김용찬(金容燦)ㆍ백응선(百膺善)ㆍ김장환(金章煥)ㆍ임두규(林斗圭)ㆍ이문평(李文平)ㆍ김희수(金熙洙)ㆍ김경희(金慶熙)ㆍ김필원(金弼遠) 등이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21일로 정하였다. 대부분 지방에서의 3ㆍ1운동은 장날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이유는 시위 군중이 장꾼으로 가장함으로써 시위 움직임을 은폐할 수 있고, 인근지역에서 모여든 장꾼들을 참여시킴으로써 쉽사리 큰 시위를 촉발시킬 수 있는 이점 때문이다.

그러나 조천에서의 거사일은 장날이 아니었다. 이 날은 조천지역 뿐만 아니라, 제주도 내의 유림 간에 명망이 높은 김시우의 기일이었다. 이는 시위 주동자들의 대부분이 김시우의 직방계(稙傍係)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의 기일을 택함으로써 그들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거사 준비는 김형배가 대형 태극기 4본의 제작을 담당하였으며, 김시범ㆍ김형배ㆍ백응선 등은 소형 태극기 300여 장의 제작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계속적인 동지의 규합 결과 14인 외에 김유배(金儒培)ㆍ김순탁(金淳鐸)ㆍ문봉기(文奉祺)ㆍ김운배(金云培)ㆍ윤주진ㆍ고원륜 등이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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