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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물/양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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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연 조회 301회 작성일 20-07-10 13:10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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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농업학교 학생의 제1차 항일 활동. 혁명적 농민조합 준비위원회의 항일 활동. 본관은 제주. 양공백(梁公伯)의 3남으로 한경면 신창(新昌)리 314번지에서 태어났다. 

1928년 2월 신창 야광(夜光)소년단에 입단, 동년 3월에 한림보통학교 6학년을 졸업, 1929년 11월 3일 전남 광주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학생 운동이 거세게 폭발하여 1930년 한 해는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파급되었다. 

제주도에는 일제 당시 중등 학교로는 제주공립농업학교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학교의 재학생들도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어수선하더니 1931년 3월 졸업 사정회(査定會)에서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21, 조천)를 제적(除籍) 처리하고 신창진(愼昌珍:18, 월정)과 양두옥(梁斗玉:18, 신창)에게 유급(留級) 조치를 내렸다. 


김원요ㆍ양두옥ㆍ신창진 등은 3학년이 된 후 평소 소위 일본 천황의 칙어(勅語)를 학교 의식 때에 봉송(奉誦)을 해도 전혀 묵도(黙禱)하지 않아 교사들로부터 주목받던 터였다. 


동년 3월 7일 졸업식 날에 김원요는 교무실에 들어가 담임인 일본 사람 야마가와(山川助夫)에게 부당한 조치에 강력히 저항하였다. 담임은 경찰에게 알리자 이를 체포하여 제주경찰서에 수감해 버렸다. 이를 알게 된 유급당한 동창 신창진과 양두옥은 동월 9일 교장실로 찾아가 스기사키(杉崎勝藏)에게 유급 조치의 부당함을 항변하고 일본인 교사 모리다(森田親厚)에게 일격을 가했다. 따라서 홍계표(洪季杓:21, 귀덕)는 교사 다카하시(高橋)와 야마가와(山川)에게 학우 김원요의 수감에 대해 부당함을 따질 때 교사 최계순(崔季淳)은 '선생에 대한 불손한 태도가 그러냐!'라고 문책했다. 


이에 홍계표는 큰 소리로 외치자 이를 신호로 고태리(泰利:20, 귀덕), 양두옥, 고운석(雲石:23, 조수), 현도선(玄道善:21, 하도), 김두진(金斗珍:20, 두모), 신찬익(申璨翊:20, 대림) 등은 일제히 교무실로 들어가 모든 공공 기물을 던지며 또 양치삼(梁致三:21, 대림) 등은 교장실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박살내었다. 이는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과 학교 당국의 황민화(皇民化) 교육에 대한 반항심의 발로였다. 이들은 3월 9일 일본 경찰에 의해 모두 체포되어 1931년 8월 29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이른 바 폭력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니 1932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아 미결 기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졸업식을 끝내고 일어난 일이라서 졸업은 인정된 상태였으나 김원요, 양두옥, 신창진 등은 영영 졸업장 없는 생애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1933년 3월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자동차 조수(助手)로 고용되었으나 얼마 후 귀향, 1934년 8월 산남 표선면 성읍리의 실형(實兄) 집에 기숙하면서 개량 서당의 교사로 재임하였다. 

앞서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 완도(莞島) 출신 김병화(金柄化)로부터 국내 공산주의자의 항일 운동 상황 등에 관하여 20여 일 교양을 받았다. 1934년 3월 5일 출옥하자 한림리의 항일 운동가 김경봉(金京奉), 신창리 좌응신(左應信:1933년 사망) 등과 동지 김두진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얼마 후 이들 동지들과 5인 결사(結社)라는 모임을 몰래 조직,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으로 일제를 타도하자고 결의 맹세하였다. 책임자 좌응신, 농민부 양두옥, 소년부 김정맹(金精孟), 연락부 김두진, 학생부 고자화(子華)가 각기 담당, 항일 투쟁의 방편으로 신창(新昌) 서당에서 이민(里民) 대회를 통해 우편소(郵便所)를 설치하려는데 저항하였다. 


운동 방침은 다음과 같이 정하여졌다. ①각 부문은 각각 목적 달성을 위하여 가장 용감하게 투쟁한다 ②세부적 운동 방침은 책임자와 협의 결정한다 ③회합은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소집한다 ④동지 획득은 엄선주의로 한다 ⑤책임자에 대한 보고는 필요하다고 인정된 때 한다. "5인 결사"는 두모ㆍ신창리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1932년 5월 1일 노동절에 서당 학생 100여 명을 인솔, 용수(龍水)리까지 시위한 관계로 고산(高山)경찰관주재소 순사에게 검속되었다. 한편, 신창ㆍ두모(頭毛) 양리민(兩里民) 대회에서 신창서당을 공립보통학교로 개편하려 하자 이는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교육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보아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또 도로 보수에 백성을 동원하자 도로 개설을 반대하였다. 양두옥, 김정맹은 이기오(李己五) 댁에 소년소녀 야학소(夜學所)를 개설, 교육을 담당하며 민족 의식을 고취시켰다. 관리들이 염색 옷 착용을 독려하자 우리는 백의 민족이니 백의는 우리의 자랑이라고 주민들에게 강조하였다. 한편, 1932년 8월 이래 항일 공산주의자 김경봉의 지도로 1933년 1월 혁명적 "제주도 농민조합 창립준비위원회" 결성에 관여하면서 동면 조수(造水)리의 좌경 항일 인사 고운석(雲石)과 자주 정세를 교환, 동지들과 일본을 위한 면행정(面行政) 반대, 좌경 서적 공동 구입, 경찰 첩자 추방을 결의하면서 투쟁을 가속화하였다. 이에 앞서 1932년 3월에 조직된 "5인 결사회"를 중심으로 운동이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결사원 양두옥, 고자화, 좌응신 등이 일본으로 도항하여 버리고, 김두진은 이탈할 조짐을 보임으로써 운동이 침체되었다. 이에 대하여 김정맹은 진순행을 새로이 교육시켜서 결사에 가입시켰다. 그리고 양두옥이 1933년 8월에 다시 귀향하자, 1933년 10월 상순에 새로이 결사를 정비하였다. 이 자리에서 부서 책임 겸 연락부는 양두옥이, 소년부는 김정맹이, 농민부는 진순행이 각각 담당하기로 하였다. 결사를 재정비한 이후 두모ㆍ신창리 운동가들은 먼저 체육회와 결혼식 등을 통하여 마을 청년들에게 민족 의식과 계급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김정맹, 진순행은 1933년 10월 상순부터 12월 하순까지 두모리 청년들에게 축구를 장려하면서, 시합이 있을 때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의식 계몽을 하였다. 또한 1933년 12월 20일 두모리 문행구의 결혼 피로연에서 결사원들이 중심이 되어 소인극(素人劇) 모의 재판을 참석자들 앞에서 치름으로써 계급 의식을 주입하였다. 


결국 일경은 1934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80여 명을 검거, 취조하던 중 혁명적 제주도농민조합의 정체가 탄로나 동지들과 체포되었다. 동년 12월 28일 김두경(金斗璟) 이하 16명을 목포검사국으로 송치(送致)되고 양두옥은 1937년 4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74주년 기념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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