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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인물 / 김옥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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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연 조회 354회 작성일 20-07-10 09:32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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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련은 1932년 1월 하도ㆍ종달ㆍ세화ㆍ우도ㆍ시흥ㆍ오조리 지역 잠녀 1천여 명이 참가한 항일투쟁을 주도했던 여성이다. 그녀는 1909년 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 서문동에서 1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물질에 나섰다. 


제주섬 동쪽의 토지는 척박하기 그지없어 여성이라면 모두가 물질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웠다. 한낱 먹고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던 물질노동의 가치에 대해 그녀는 야학을 통해 새로 자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 1회 졸업생으로서, 오문규ㆍ문무현ㆍ부대현ㆍ김태륜 등 청년 지식인 교사들에게 근대적인 민족 교육을 받았다. 


'농민독본'ㆍ'노동독본' 등의 계몽서를 배우고, 한글ㆍ한문뿐만 아니라 저울 눈금 읽는 법까지 교육받았다. 1930년대에 접어들자 잠녀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어야 할 해녀조합은 철저히 어용화되어 그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김옥련을 비롯한 잠녀들은 관제 해녀조합에 대항하여 해녀회를 조직하여 단결하여 갔다. 결국 1931년 12월부터 시작된 해녀조합에 대한 투쟁은 이듬해 1월 7일과 12일 오일장날을 이용한 대규모 시위로 전개되었다. 1월 12일 시위에서 잠녀들은 세화리를 지나던 다구치 도사 일행을 향해 호미와 비창을 들고 “우리들의 요구에 칼로써 대응하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대응한다”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일제 경찰은 이 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했다. 김옥련은 잠녀 주동자 부춘화ㆍ부덕량과 함께 검거되어 6개월 간 경찰서에서 고문과 취조를 받으면서도 항일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녀가 주동한 제주잠녀투쟁은 일제강점기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여성대중의 항일운동으로서 한국사에서도 높게 평가된다. 작년 정부는 잠녀투쟁의 전면에 나선 그녀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함으로써, 비로소 이 투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렸다. 






출처:https://www.jeju.go.kr/culture/history/person.htm?page=1&act=view&seq=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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